
[ESG 경영 칼럼] 연결된 기술, 단절된 공간을 넘다: 기아 원격 운전 실증의 명과 암
최봉혁 칼럼니스트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에 운전자가 없다. 영화 속 장면이 아니다. 지난 27일 제주도에서 현실이 된 풍경이다. 기아가 국내 완성차 업체 최초로 일반 도로에서 원격 운전 실증에 성공했다. 이는 단순한 기술 과시가 아니다. 자율주행 시대로 가는 과도기적 교두보이자, 교통 소외 지역의 이동권을 보장하려는 '사회적 가치(Social)'의 실현 가능성을 보여준 사건이다. 그러나 화려한 기술의 이면에는 통신망의 안정성이라는 근본적인 리스크가 도사리고 있다. ESG 경영의 관점에서 이번 실증의 성과와 과제를 심층적으로 들여다본다.
원격 운전, 자율주행의 완벽한 보완재
이번 실증은 기아를 필두로 쏘카, 에스유엠(SUM), KT가 컨소시엄을 이뤄 진행했다. 핵심은 4G와 5G 네트워크를 이용해 원격지에서 차량을 제어하는 기술이다. 왜 완전 자율주행이 아닌 원격 운전인가? 현재의 자율주행 기술(레벨 3~4)은 악천후나 복잡한 공사 구간 등 돌발 상황에서 한계를 드러낸다. 이때 인간이 원격으로 개입하여 차량을 안전하게 유도하는 '텔레오퍼레이션(Teleoperation)' 기술은 필수적인 안전장치다.
기아의 목적 기반 모빌리티(PBV)인 'PV5'를 활용한 이번 시연은 제주공항과 쏘카 스테이션 사이의 혼잡한 도심 구간에서 이루어졌다. 시속 40~50km의 속도로 신호를 인식하고 차선을 변경하는 과정이 매끄럽게 진행됐다. 이는 기술이 실험실을 벗어나 실생활의 영역으로 진입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해외 사례로 본 원격 운전의 현재
글로벌 시장은 이미 원격 운전 상용화 경쟁이 치열하다. 독일의 스타트업 '베이(Vay)'는 라스베이거스에서 원격 운전 차량 호출 서비스를 상용화했다. 운전자가 없는 차가 승객에게 배달되고, 승객이 목적지에 도착하면 다시 원격 조종사가 차를 회수하는 방식이다. 스웨덴의 '아인라이드(Einride)'는 운전석이 아예 없는 화물 트럭을 원격으로 제어해 물류 혁신을 이끌고 있다. 미국의 '팬텀 오토(Phantom Auto)'는 비록 경영난을 겪었으나 물류센터 내 지게차 원격 제어 분야에서 기술적 토대를 닦았다.
이들 사례의 공통점은 '인력 효율화'와 '안전'이다. 한 명의 원격 조종사가 여러 대의 차량을 모니터링하다가 필요시에만 개입함으로써 운영 비용을 낮추고, 위험한 현장에 사람이 직접 가지 않아도 되는 안전한 환경을 조성한다. 기아의 이번 행보 역시 이러한 글로벌 흐름과 궤를 같이하며, 한국형 모빌리티 서비스의 표준을 정립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ESG의 'S(Social)': 교통 소외 지역과 이동권
이번 기술이 ESG 경영 측면에서 가장 빛을 발하는 지점은 '사회적 가치(Social)' 창출이다. 기아는 이 기술을 교통 소외 지역 지원 솔루션으로 제시했다. 버스 노선이 폐지되거나 택시가 잡히지 않는 벽지 지역에 원격 운전 셔틀을 투입한다면, 고령자와 장애인 등 이동 약자들의 발이 되어줄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이동 편의를 넘어, 지역 간 불균형을 해소하고 보편적 복지를 실현하는 기술적 도구로 작용한다. 또한 카셰어링 서비스에서 차량을 인도하고 반납하는 과정을 무인화함으로써 탄소 배출을 줄이는 '환경적(Environmental)'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치명적 리스크: 통신 음영 지역의 딜레마
그러나 장밋빛 전망 뒤에는 냉정한 현실 인식이 필요하다. 사용자가 지적했듯, 원격 운전의 가장 큰 아킬레스건은 '통신 안정성'이다. 원격 운전은 실시간 영상 전송과 제어 명령이 0.1초의 지연도 없이 이루어져야 한다. 기아 컨소시엄은 이를 위해 4G와 5G망을 동시에 사용하는 이중화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밝혔다.
문제는 이 기술이 가장 필요한 곳이 역설적으로 통신 환경이 가장 열악한 '교통 소외 지역'이라는 점이다. 도심지는 5G 커버리지가 촘촘하지만, 산간 오지나 해안 도로는 여전히 통신 음영 지역이 존재한다. 만약 2톤이 넘는 차량이 주행 중 통신이 끊긴다면? 이는 곧바로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다. 단순히 망을 두 개 쓴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심층 분석: 안전을 위한 기술적·제도적 제언
따라서 진정한 상용화를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과제들이 선결되어야 한다.
첫째, '엣지 컴퓨팅(Edge Computing)'과 V2X(Vehicle to Everything) 인프라의 확충이다. 차량이 중앙 관제 센터의 명령만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통신 단절 시 스스로 갓길에 정차하거나 최소한의 안전 주행을 유지할 수 있는 독립적인 판단 능력을 갖춰야 한다. 이를 위해 도로 자체에 센서와 통신 장비를 심는 지능형 교통 체계(C-ITS)가 소외 지역까지 확대되어야 한다.
둘째, 통신 품질 보장형 SLA(서비스 수준 협약)의 적용이다. 통신사는 원격 운전 구간에 대해 일반적인 통신망보다 훨씬 엄격한 데이터 전송 품질을 보증해야 한다. 이는 통신사(KT)가 컨소시엄에 포함된 이유이기도 하지만, 단순 참여를 넘어 법적 책임 수준의 품질 보장이 필요하다.
셋째, 사이버 보안(Governance)이다. 원격 제어는 해킹의 표적이 되기 쉽다. 차량 제어권을 탈취당하는 것은 테러와 다름없다. 따라서 금융망 수준의 보안 암호화와 블록체인 기반의 인증 시스템 도입이 필수적이다.
결론: 기술은 사람을 향할 때 완성된다
기아의 원격 운전 실증 성공은 대한민국 모빌리티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사건이다. 하지만 기술의 성공이 곧 서비스의 안착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ESG 경영의 본질은 리스크를 관리하고 지속 가능한 생태계를 만드는 데 있다. 교통 소외 지역을 돕겠다는 선한 의도가 안전이라는 기본적인 가치를 위협해서는 안 된다.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기업은 기술 개발 못지않게 통신 인프라의 고도화와 비상 대응 시나리오 구축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연결'이 끊기는 순간, '안전'도 끊긴다. 기술이 진정으로 사람을 향하고, 공공의 이익에 부합할 때 비로소 핸들 없는 자동차는 우리 곁으로 안전하게 다가올 것이다. 기아의 이번 도전이 단순한 시연을 넘어, 안전하고 포용적인 미래 모빌리티 사회를 여는 마중물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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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 경영 칼럼] 연결된 기술, 단절된 공간을 넘다 기아 원격 운전 실증의 명과 암 - 더이에스지(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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