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반응형

    [칼럼]"음악 공헌, '기술 융복합'으로... 장애예술인에게 '극복' 아닌 '기회' 줘야"-①

    [칼럼]"음악 공헌, '기술 융복합'으로... 장애예술인에게 '극복' 아닌 '기회' 줘야"-①

    글 ㅣ 이성민.예술사 ㅣ 예술사회공헌 기획자

    "장애를 극복한 감동적인 연주."

    장애예술인의 공연이 끝난 후 흔히 따라붙는 수식어다. 이는 분명 격려와 찬사의 표현이지만, 그 이면에는 장애예술인을 '복지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시선이 자리하고 있다. 이 '감동'이라는 단어 속에는 이미 '장애에도 불구하고 이만큼 해냈다'는 비장애인 중심의 시혜적 관점이 숨어있다.

    음악은 본래 음정(Musicality)과 전문성(Professionalism)을 중심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비장애인 연주자에게 '테크닉이 절묘하다'거나 '곡의 해석이 탁월하다'고 평가하는 반면, 유독 장애예술인의 음악에는 '치유'와 '재활'의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이는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복지'라는 틀 안에 가두는 결과를 낳는다. 예술을 예술 그 자체로 보지 않고, 장애를 극복하는 과정이나 재활의 수단으로만 한정하는 것이다.

    진정한 장애 인식 개선은 장애예술인을 '예술가' 그 자체로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예술은 누구나 누릴 권리가 있으며, 장애예술인 역시 그들의 실력으로 평가받고 예술 활동을 통해 자립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미디어 역시 '인간 승리'의 서사를 부각하며 이러한 편견을 강화하는 데 일조하기도 한다.

    현재의 장애예술 지원은 획일적인 경우가 많다. 특히 발달장애 아동의 음악 교육이나 중도장애인의 재활 과정은 개인의 특성과 잠재력을 고려하지 않은 채 동일한 틀 안에서 이루어지곤 한다. 이는 각기 다른 예술적 재능과 가능성을 무시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예를 들어, 발달장애 예술인에게는 감각 통합 중심의 장기적이고 반복적인 도제식 교육이 필요할 수 있다. 반면, 사고로 중도장애를 입은 전문 연주자에게는 기존의 기량을 유지하거나 대체할 수 있는 특수 훈련 및 보조 공학이 절실하다. 하지만 현재의 지원 시스템은 이러한 장애 유형과 생애 주기별 특성을 세밀하게 구분하지 못하고, 행정 편의적인 '통합 지원'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이는 결국 누구에게도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결과를 낳는다.

    음악 공헌 활동 역시 마찬가지다. 많은 기업과 단체가 선의를 가지고 음악 공헌 활동에 나선다. 그러나 그 방식이 일회성 이벤트나 시혜적인 지원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연말 자선 음악회에 장애예술인을 '감동의 아이콘'으로 내세우고, 후원금을 전달하는 방식이다.

    이는 장애예술인을 '도움이 필요한 존재'로 규정하며 '극복'의 서사를 강요한다. 이러한 활동은 단기적인 감동을 줄 수는 있으나, 장애예술인이 전문 예술가로 성장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만드는 데는 한계가 있다. 청중에게는 '감동'을, 기업에게는 '선한 이미지'를 줄지언정, 정작 무대에 선 예술가에게는 '복지의 대상'이라는 낙인을 다시 한번 찍는 행위가 될 수 있다.

    기업의 ESG 경영 관점에서도 이는 중요한 'S(Social)'의 영역이다. 하지만 단순한 기부나 일회성 후원은 진정한 사회적 가치 창출이라 보기 어렵다. 이는 ESG 워싱(Washing)에 가까울 수 있다. 진정한 'S' 활동은 장애예술인이 동등한 주체로 설 수 있도록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다.

    '복지'의 프레임을 넘어 '예술'의 본질로 접근해야 한다. 장애예술인을 동정이나 연민의 대상이 아닌, 우리 사회의 문화적 자산을 풍부하게 할 '전문 예술가'로 바라보는 인식의 대전환이 시급하다.

    그렇다면 이 '복지'의 굴레를 끊고 '예술'의 무대를 세우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해답은 '융복합(Convergence)'에 있다.

    첫째, '교육의 융복합'이 절실하다. 앞서 언급했듯, 장애 유형과 생애 주기에 따른 맞춤형 지원 체계가 필요하다. 오르프(Orff), 코다이(Kodály) 등 감각 통합 중심의 글로벌 교육법을 기반으로 한 전문 아카데미를 설립하고, 이들이 독창적인 음악 언어를 개발할 수 있도록 장기적인 앙상블 과정을 지원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취미 교육이 아닌, 프로 예술가를 양성하는 전문 교육 과정이어야 한다.

    둘째, '기술과의 융복합'이다. 특히 지체장애인의 경우, 가장 큰 장벽은 재능이 아니라 '물리적 인터페이스의 한계'일 수 있다. 기존 악기 대부분이 비장애인의 신체에 맞춰져 있어 연주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극복 의지'가 아니라, 연주를 가능하게 하는 '기술적 지원'이다.

    시력이 나쁜 사람이 안경을 쓰는 것을 '극복'이라 부르지 않듯, 한 손으로 연주 가능한 악기, 시선이나 호흡으로 제어 가능한 전자악기 등 '배리어프리(Barrier-free) 악기'의 개발과 보급은 당연한 권리 보장이다. 보조공학 기술(Assistive Technology)과 예술의 만남은 장애예술인의 잠재력을 폭발시킬 기폭제가 될 것이다.

    셋째, '사회-의료-예술의 융복합'이다. 중도장애를 입은 연주자가 경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특수 훈련, 대체 연주법 개발 등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예술-의료 융합 재활'과 같은 새로운 접근이 요구된다.

    이 모든 과정에서 '음악 공헌 활동'의 역할이 재정의된다. 기업의 진정한 ESG 경영은 일회성 연주회 후원이 아니다. 장애예술인을 위한 '배리어프리 악기 R&D'에 투자하고, 이들이 전문성을 갖출 수 있도록 '맞춤형 교육 시스템'을 지원하며, 이들의 연주를 '채용'의 관점에서 활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감동'을 소비하는 대신, 이들의 '노동'에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 지속가능한 생태계의 핵심이다.

    "음악은 차별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음악 그 자체에는 장벽이 없다. 장벽은 오직 우리의 편견과 획일적인 시스템, 물리적 환경에만 존재할 뿐이다. 장애 인식 개선과 음악 공헌 활동의 융복합은, 장애예술인에게 '감동'의 무대가 아닌 '공감'의 무대를, '극복'의 서사가 아닌 '프로'의 서사를 선사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이성민 한국나눔예술원 대표. 예술사회공헌 기획자이자 성악가. 음악과 복지의 접점을 탐구, 실천 프로그램을 만든다. 런던시티대 예술경영 석사, (사)뷰티플마인드 사무국장 역임. 연세대 출강.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