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애인인식개선신문 = 최봉혁 칼럼니스트)
세계보건기구(WHO)가 2026년 5월 4일 한타바이러스에 대한 최신 팩트시트와 함께 '한타바이러스 유행 대응 도구 모음(Outbreak Toolkit)'을 공개했다. 사례 정의, 데이터 수집 도구, 실험실 확인 지침, 감염 예방 및 통제 프로토콜에 이르기까지 각국 보건 당국이 한타바이러스 유행에 체계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구성된 종합 지침이다. 그러나 이 방대한 도구 모음 어디에도 '장애인'이라는 단어는 등장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지점이다.
한타바이러스, 한국과 떼어놓을 수 없는 감염병
한타바이러스라는 이름 자체가 경기도 동두천 한탄강에서 유래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2024년에도 국내에서 373명의 신증후군출혈열 환자가 신고되었으며, 전남·충남·전북·경남·경기 순으로 농촌 지역에 집중 발생했다. WHO에 따르면 아시아·유럽 지역 치사율은 1~15%, 미주 지역 한타바이러스 심폐증후군(HCPS)의 치사율은 20~50%에 달한다. 승인된 백신이나 항바이러스 치료제가 없어 조기 발견과 대증요법이 유일한 대응 수단이다.
WHO의 대응 도구 모음은 의심 환자를 "이전에 건강했던 사람이 입원 후 72시간 이내에 38.5°C 이상의 발열과 함께 산소 공급이 필요한 급성 호흡곤란 증후군, 양측성 확산성 폐 침윤을 보이는 경우"로 정의하고, 확진은 한타바이러스 특이적 IgM 항체 검출, IgG 역가 4배 이상 증가, RT-PCR 양성, 면역조직화학 양성 중 하나로 확인한다. 실험실 검사, 데이터 수집, 임상 관리에 이르는 체계적 대응 프레임워크를 제시하고 있지만, 감염 취약계층에 대한 별도의 고려는 담겨 있지 않다.
장애인이 감염병 앞에서 더 취약한 구조적 이유
코로나19 팬데믹은 감염병이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지 않다는 사실을 잔혹하게 증명했다. 당시 장애인 사망률은 2.61%로, 비장애인(0.44%)보다 약 6배 높았다. 이 격차는 바이러스의 생물학적 특성 때문만이 아니다. 호흡기 장애인은 기저 폐 기능 저하로 호흡기 감염에 본질적으로 취약하고, 신장이식 장애인은 면역억제제 복용으로 면역력이 낮으며, 신장장애인은 주 2~3회 혈액투석을 위해 의료기관에 반복 방문해야 하므로 감염 노출이 상존한다. 발달장애인은 손 위생이나 마스크 착용 같은 자기 방역 수칙을 독립적으로 수행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고, 시각장애인은 오염 구역을 시각적으로 인지할 수 없으며, 청각장애인은 음성 기반의 방역 안내를 수신하지 못한다.
한타바이러스는 설치류의 소변, 배설물, 타액이 마른 후 먼지 형태로 공기 중에 떠다닐 때 흡입을 통해 감염된다. WHO는 밀폐되거나 환기가 불량한 공간 청소, 농작업, 설치류가 서식하는 주거지에서의 생활을 주요 위험 요인으로 꼽는다. 이를 장애인의 생활 현실에 대입해 보면, 주거 환경이 열악한 저소득 장애인 가구, 노후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 독립적인 주거 관리가 어려운 중증 장애인이 설치류 서식 환경에 더 오래 노출될 수 있다는 점은 자명하다. WHO가 권고하는 "쥐 배설물이 있는 바닥에 물을 뿌린 후 닦아내기", "건물 틈새 막기", "식품 밀폐 보관" 같은 예방 수칙도 거동이 불편하거나 활동 보조가 부족한 장애인에게는 실행 가능성이 현저히 떨어진다.
김예지 의원 법안, 감염병 대응의 빈칸을 메우다
이러한 구조적 공백을 메우기 위한 법적 시도가 이미 시작되었다. 2026년 2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예지 의원은 사회복지시설 이용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장애인을 감염취약계층으로 명시하고, 질병관리청장도 의료·방역 물품을 직접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현행법은 사회복지시설을 이용하는 장애인만을 감염취약계층으로 규정하고 있어, 시설을 이용하지 않는 다수의 재가 장애인은 방역 물품 지원 등 보호 대상에서 사실상 배제되어 왔다.
김예지 의원은 "감염병 위기 상황에서 장애인의 건강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라고 밝힌 바 있다. 이 법안이 통과된다면, 한타바이러스를 포함한 모든 감염병 유행 시 장애인에 대한 마스크·소독제 등 방역 물품의 우선 배분, 장애 유형별 맞춤형 방역 정보 제공, 의료 접근성 보장 등에 법적 근거가 마련된다.
WHO 대응 도구에 '장애 포용'이 빠져 있다
WHO의 한타바이러스 대응 도구 모음은 사례 정의, 실험실 확인, 감염 예방 및 통제, 의료 현장 지침에 이르기까지 체계적이고 포괄적이다. 그러나 이 도구 모음은 '이전에 건강했던 사람(previously healthy person)'을 기준으로 사례를 정의하고 있으며, 기저 질환이나 장애로 인해 비전형적 임상 양상을 보일 수 있는 환자에 대한 별도의 고려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데이터 수집 양식에 장애 유무를 기록하는 항목이 없고, 위험 소통(Risk Communication) 지침에 장애 유형별 접근성 높은 정보 전달 방식에 대한 언급도 없다. 교육 자료(Training) 항목은 아예 '사용할 수 없음(Not available)'으로 비어 있는 상태다.
이것은 WHO만의 문제가 아니다. 감염병 대응 체계 전반이 '표준적인 신체 조건을 가진 성인'을 암묵적 기준으로 설계되어 있다는 구조적 한계를 반영한다. 장애인은 전 세계 인구의 약 16%에 해당한다. 감염병 대응 도구가 인구의 16%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그 도구는 완전하다고 할 수 없다.
남겨진 과제
한타바이러스는 매년 돌아오는 위협이다. 한국에서는 특히 가을 추수철에 환자가 집중되며, 기후변화로 설치류 서식 범위가 확대되고 캠핑 인구가 늘면서 노출 기회는 증가하고 있다. WHO가 강조하는 '원 헬스(One Health)' 접근법, 즉 인간·동물·환경의 건강을 통합적으로 다루는 패러다임은 반드시 '장애 포용(Disability Inclusion)'을 내재해야 한다.
김예지 의원의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더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하다. 우리는 감염병 대응 매뉴얼을 만들 때, 휠체어를 타고 약국에 갈 수 없는 사람을, 방역 안내 방송을 들을 수 없는 사람을, 마스크를 스스로 착용하기 어려운 사람을 떠올리고 있는가. 한타바이러스 대응 도구 모음의 빈칸에 '장애인'이라는 단어가 채워질 때, 비로소 감염병 대응 체계는 진정한 보편성을 갖추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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