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경영칼럼] 밀키트가 지불해야 할 '지속가능성 청구서'
최봉혁 칼럼니스트 (한국구매조달학회 이사)
서론: 번영 뒤에 찾아온 그림자
밀키트(Meal Kit) 시장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집콕 수요’를 등에 업고 급성장했다. 편리함과 건강을 동시에 잡겠다는 소비자의 니즈에 부응하며 글로벌 시장은 연평균 20%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국내에서도 CJ프레시웨이의 '비비고 밀키트', 마켓컬리의 '밀키트 서비스' 등이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2023년을 기점으로 급격한 역성장의 늪에 빠졌다. 삼성증권 리서치에 따르면, 국내 밀키트 시장은 2023년 전년 대비 10% 이상 위축되었으며, 글로벌 시장도 성장률이 5% 미만으로 주저앉았다. 이는 단순한 시장 포화 현상을 넘어, 밀키트 비즈니스 모델 자체의 근본적인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취약성이 드러난 결과다. 편의를 추구한 대가가 환경과 사회에 되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1. 역성장의 현실: 데이터로 본 충격적 전환
국내 시장 급냉: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자료(2024)에 따르면, 밀키트 구매 경험이 있는 소비자 중 향후 구매 의사가 없다는 응답이 42%로 나타났다. 주요 이유는 '가격 부담'(35%), '포장 과잉에 대한 환경 부담감'(28%), '신선도 불만'(22%)이었다.
글로벌 기업의 고전: 시장 선두주자 '헬로프레시'(HelloFresh)는 2023년 4분기 순주문(Net Order)이 전년 대비 7% 감소하며 실적 부진을 고백했다(HelloFresh 공시, 2024.02). 미국의 '블루 에이프런'(Blue Apron)은 지속적인 적자와 주가 폭락으로 상장 폐지 위기를 맞았다.
투자 시장의 외면: 밀키트 스타트업에 대한 벤처캐피털 투자 규모는 2021년 정점 대비 2023년 70% 이상 급감했다(CB Insights, 2024.03). 지속가능성 의문이 투자 매력을 떨어뜨린 것이다.
2. 역성장의 근본 원인: ESG 리스크의 총체적 발현
밀키트의 역성장은 단순한 경기 침체나 경쟁 심화 때문이 아니다. 비즈니스 모델의 핵심에 내재된 ESG적 취약점이 소비자 의식 변화와 결합하며 터진 것이다.
환경적 요인 (E): 포장 쓰레기의 재앙
과대포장의 상징: 밀키트 한 상자에는 평균 7겹의 포장재(외부 박스, 아이스팩, 냉장팩, 개별 재료 비닐, 소스 용기 등)가 사용된다(환경부, 2023). 이는 전통 식품 유통보다 3배 이상 많은 포장 폐기물을 발생시킨다.
재활용 불가능한 혼합 폐기물: 다양한 소재(플라스틱, 폼패킹, 알루미늄, 종이)가 혼합된 포장재는 분리 수거와 재활용이 극히 어려워 대부분 소각 또는 매립된다. 유럽연합(EU) 연구에 따르면 밀키트 포장재의 실질 재활용률은 15% 미만이다.
탄소 발자국 확대: 개별 소포장, 냉장/냉동 유지를 위한 에너지, 복잡한 유통망은 전통 식자재 구매 대비 2~3배 높은 탄소 배출을 유발한다(미국 환경보호청 EPA 추정치, 2023).
소비자 의식 변화: MZ세대를 중심으로 환경 문제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며, 밀키트의 ‘일회용 포장 과잉’에 대한 환경적 죄책감(Climate Guilt)이 구매 저해 요인으로 작용한다. 배달의민족 설문(2024)에서 응답자의 68%가 "밀키트 포장 폐기물에 대한 부담감이 구매를 막는다"고 답했다.
사회적 요인 (S): 비용 대비 가치 의문과 공정성 문제
가격 경쟁력 상실: 편의성 프리미엄이 지나치게 높아져 소비자들의 가성비 불만이 폭발했다. 동일한 요리를 만드는데 밀키트 구매비용이 재료 직접 구매 대비 평균 1.5~2배 이상 비싸다(소비자시민단체 조사, 2023).
근로자 처우 논란: 급속한 성장기에 확장된 물류 및 조리 시설에서 저임금, 장시간 노동, 안전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다. 특히 피크타임(주문 집중 시간)의 과도한 업무량은 큰 스트레스 요인이다.
중소 생산자 배제?: 대량 주문과 균일한 품질을 요구하는 대형 밀키트 기업의 공급망은 대규모 농장/식품업체 위주로 구성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지역 소농, 중소 식재료 업체의 시장 접근성을 제한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았다.
거버넌스 요인 (G): 공급망 취약성과 윤리적 딜레마
복잡한 공급망 리스크: 원자재(농산물, 축산물, 수산물, 가공식품) 조달부터 가공, 포장, 냉장 유통까지의 긴 사슬은 외부 충격(기후변화, 지정학적 리스크, 유가 상승)에 취약하다. 2022년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급등한 곡물·유류 가격과 운송비는 밀키트 기업의 원가를 급증시켰다.
식품 안전 관리의 어려움: 다단계 공급망과 복잡한 유통 과정은 이물 혼입, 세균 오염, 유통기한 관리 소홀 등의 위험을 증가시킨다. 리콜 사태 발생 시 원인 추적과 대응도 까다롭다.
녹색세탁(Greenwashing) 우려: 일부 기업이 부분적인 친환경 포장 도입이나 소규모 탄소 상쇄 프로젝트만으로 지속가능성을 과대 선전하는 사례가 비판받고 있다.
3. 글로벌 기업의 대응 현황: 위기 속의 전환 시도
환경적 개선 (E):
포장 혁신: 헬로프레시는 재활용 가능한 PP(폴리프로필렌) 소재 용기 사용 확대 및 재사용 가능한 아이스팩 도입을 시험 중이다. 아마존의 '컴팩트 바이 디자인'(Compact by Design) 프로그램은 과대포장을 줄인 제품을 우대하며 밀키트 업체들의 설계 변경을 촉진한다.
순환 경제 모델: 영국 '거버'(Gousto)는 재사용 가능한 냉각 상자 및 아이스팩 반납 시스템을 도입해 폐기물을 60% 이상 줄였다. 네덜란드 '마리트'(Marley Spoon)는 버려지는 채소 부산물로 비료 제작을 시도한다.
탄소 중립 목표: 대부분의 주요 글로벌 기업이 2030~2040년 탄소 중립 목표를 설정하고, 재생에너지 전환, 운송 효율화(전기차 배송 등)에 투자 중이다.
사회적 책임 강화 (S):
공정한 구매(공급망 투명성): 미국 '선바스켓'(Sunbasket)은 유기농 인증 재료, 지속가능한 어업(MSC 인증) 제품, 공정무역 원료 사용 비중을 높이고 공급처 정보를 공개한다.
근로자 복지: 독일 '헬로프레시'는 물류센터 직원들에게 생활 임금 보장, 직업 교육 기회 확대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지역사회 기여: 지역 식량은행과 협력해 유통기한 임박 제품 기부를 확대하는 사례(예: 미국 '홈 쉐프')가 늘고 있다.
거버넌스 개선 (G):
공급망 다변화 및 지역화: 기후변화와 글로벌 공급망 불안에 대응해 국내/인근 지역 생산자 비중 확대를 추진 중이다. 이는 운송거리 단축으로 탄소 배출 감소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AI 기반 수요 예측: IBM 왓슨, 구글 클라우드 AI 등을 활용해 수요를 정교하게 예측함으로써 재고 손실(Food Waste)과 불필요한 생산/운송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시도가 활발하다(예: 미국 '팬트리').
4. AI 시대의 영향: 역성장의 해법인가, 새로운 도전인가?
AI는 밀키트 산업이 ESG 문제를 극복하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모색하는 데 핵심 도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윤리적 사용은 필수적이다.
긍정적 영향 (해결사 역할):
초정밀 수요 예측 & 재고 관리: AI 알고리즘은 날씨, SNS 트렌드, 지역별 판매 패턴, 개인 구매 이력 등을 분석해 향후 수요를 높은 정확도로 예측한다. 이는 식품 폐기물을 획기적으로 감소(현재 밀키트 업계 평균 10~15% 폐기율)시키고, 불필요한 생산·운송을 줄여 탄소 배출과 비용을 동시에 절감한다.
개인 맞춤형 서비스 고도화: 고객의 건강 상태(알레르기, 만성질환), 식습관(비건, 케토 등), 취향, 목표(체중 감량 등)를 AI가 분석해 완벽하게 맞춤화된 레시피와 재료 구성을 제안한다. 이는 고객 만족도 제고와 건강 증진(S) 효과를 낸다.
공급망 최적화 & 위험 관리: 실시간 데이터(기상, 교통, 원자재 가격, 지정학적 이슈)를 AI가 분석해 가장 효율적이고 탄소 배출이 적은 유통 경로를 제시한다. 또한 공급망 전반의 위험 요소를 조기에 감지해 장애를 사전에 예방(G)한다.
지속가능한 포장 디자인: AI 시뮬레이션을 통해 보호 성능은 유지하면서 최소한의 재료를 사용하고, 분리 수거·재활용이 용이한 구조를 가진 친환경 포장을 설계하는 데 활용된다.
에너지 효율화: AI가 조리 시설과 물류센터의 냉장·냉동 에너지 사용을 실시간으로 최적화하여 전력 소비를 줄인다(E).
부정적 영향 & 고려사항 (새로운 도전):
데이터 프라이버시 침해 우려: 개인의 건강 정보, 식습관, 위치 정보 등 민감한 데이터 수집·활용 과정에서 프라이버시 보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투명한 동의 절차와 강력한 보안 체계 구축이 필수적이다.
알고리즘 편향(Algorithmic Bias): AI 학습 데이터에 내재된 편향이 특정 재료나 레시피를 지나치게 추천/배제할 수 있다. 이는 다양성 감소나 특정 생산자 배제(S)로 이어질 수 있다. 지속적인 편향 검토와 조정 필요.
인력 대체 및 윤리: AI 기반 자동화(조리, 포장, 물류) 확대로 저숙련 일자리가 감소할 수 있다. 재교육 및 전환 프로그램 마련이 중요하다(S).
에너지 소비 문제: 고성능 AI 모델의 학습과 운영에는 막대한 전력이 소요된다. 재생에너지로 운영하지 않으면 환경적 이점이 상쇄될 위험(E)이 있다.
5. ESG 경영으로의 전환을 위한 제언: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하여
밀키트 산업이 역성장의 늪에서 벗어나 진정한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ESG를 비즈니스 전략의 핵심에 두고 근본적인 전환을 모색해야 한다.
포장 혁명: "제로 웨이스트(Zero-Waste)" 목표 설정
재사용 시스템(Reusable System) 확대: 내구성 있는 용기, 아이스팩의 반납·세척·재사용 체계 구축. 초기 투자 비용은 높지만 장기적 환경·경제적 이득이 크다.
혁신적 친환경 소재 도입: 버려지는 식물성 부산물(버섯 균사체, 해조류, 과일 섬유 등)로 만든 생분해 포장재, 재활용률 높은 단일 소재(모노머터리얼) 사용을 적극 연구·적용해야 한다. (예: 테스코의 곰팡이 균사체 포장재)
절대적 포장량 감축: AI 기반 정밀한 충격 시뮬레이션을 통해 불필요한 포장 층을 과감히 제거하는 디자인 혁신.
지역 순환형 공급망 구축: "로컬라이제이션(Localization)"
거점별 지역 생산자 네트워크 강화: 중앙집중식 대규모 공장보다 소규모 지역 허브를 구축해 인근 농장·식재료 업체와 직접 연계. 운송 거리 단축으로 탄소 배출 감소(E), 지역 경제 활성화(S), 신선도 향상을 동시에 달성한다. (예: 한국 CJ프레시웨이의 지역 농가 협력 사례)
투명한 공정거래: 중소 생산자에 대한 공정한 가격 보장, 장기 계약을 통한 안정적 수익 창출 보장으로 공급망 회복탄력성(G)과 사회적 책임(S)을 강화.
가치 재정의: "편의에서 경험과 가치로"
프리미엄 경험 제공: 단순한 편의성 판매를 넘어, 특별한 레시피(셰프 협업, 글로벌 요리), 건강 관리 솔루션(영양사 협업, 맞춤형 식단), 요리 교육 콘텐츠(동영상 튜토리얼, 온라인 클래스)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를 결합해 가격에 대한 인식을 전환해야 한다.
소비자 참여형 ESG 활동: 포장재 반납 시 인센티브 제공, 탄소 배출량 표시 및 상쇄 옵션 선택, 기부 연계 프로그램(구매액 일부 기부) 등 소비자가 ESG 활동에 직접 참여하며 공동체 의식을 고취시킬 수 있는 방안 모색.
AI의 윤리적·효율적 활용: "책임 있는 혁신"
ESG 목표 달성을 위한 AI 적용: AI의 힘을 수요 예측(폐기물 감소), 공급망 최적화(탄소 감축), 맞춤형 건강 관리(S) 등 ESG 성과 향상에 집중한다.
투명성과 공정성 보장: AI 의사결정 프로세스의 투명성(Explainable AI), 데이터 수집·사용에 대한 명확한 동의 절차, 편향 정기 검증 및 조치를 통해 신뢰를 구축한다.
재교육 및 전환 지원: AI 도입으로 변화하는 업무 환경에 맞춰 종업원의 스킬 업그레이드(데이터 분석, AI 관리) 지원 프로그램을 필수적으로 운영한다(S, G).
결론: 지속가능성 없는 편의는 미래가 없다
밀키트 시장의 역성장은 편의를 추구하는 현대 소비문화가 환경과 사회에 치르는 '숨겨진 비용'이 가시화된 사례다. 이는 단일 산업의 문제를 넘어, '편의 중심'의 선형 경제(Linear Economy: Take-Make-Waste) 모델이 더 이상 지속 불가능함을 시사하는 경고등이다. 생존과 미래 성장을 위해서는 ESG를 핵심 경쟁력으로 삼아 비즈니스 모델을 근본적으로 재설계해야 한다. 혁신적인 포장 솔루션, 지역 기반의 회복탄력적인 공급망, AI를 활용한 초정밀 운영, 그리고 소비자와 함께하는 가치 창출이 그 해법이다. 진정한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기업만이 환경 위기와 소비자 의식 변화라는 거친 파도를 넘어, 새로운 미래 식문화의 리더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밀키트 산업의 고통스러운 전환기는 모든 산업에 던지는 ESG 경영의 교훈이자 기회다.
참고문헌 (출처)
삼성증권. (2023). 국내 식품유통산업 리포트: 밀키트 시장 성장률 둔화 및 전망.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2024). 2023 밀키트 소비자 인식 조사 보고서.
HelloFresh SE. (2024). Q4 2023 Trading Statement.
CB Insights. (2024). State of Venture Q1'24: Food Tech & Meal Kits.
환경부. (2023). 밀키트 포장폐기물 실태조사 및 관리방안 연구.
European Environment Agency (EEA). (2023). Plastic packaging waste from e-commerce and meal kits: Challenges and opportunities for recycling.
배달의민족. (2024). MZ세대 식생활 트렌드 리포트 2024.
소비자시민단체. (2023). 밀키트 가격-가치 비교 분석 보고서.
McKinsey & Company. (2023). Building resilience in the food supply chain.
IBM. (2023). How AI is Transforming the Food Industry: Case Study - Reducing Waste in Meal Kits.
Gousto. (2024). Sustainability Report 2023: Our Reusable Packaging Pilot.
Sunbasket. (2024). Our Commitment: Sourcing Transparency and Sustainability.
Tesco PLC. (2023). Innovation in Sustainable Packaging: Mycelium Pilot Project.
World Economic Forum (WEF). (2023). Ethical AI in the Food Industry: Principles and Best Practices.
Ellen MacArthur Foundation. (2022). The Circular Economy Solution to Plastic Pollution: Rethinking Packaging in the Meal Kit Industry.
https://www.esgre100.com/news/articleView.html?idxno=2412
[ESG경영칼럼] 밀키트가 지불해야 할 '지속가능성 청구서' - 더이에스지(theesg)뉴스
[ESG경영칼럼] , 밀키트가 지불해야 할 '지속가능성 청구서'(더이에스지뉴스= 최봉혁칼럼니스트)서론: 번영 뒤에 찾아온 그림자밀키트(Meal Kit) 시장은 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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