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부터 3일 연속 노벨 생리의학상, 물리학상, 화학상까지 노벨 과학상 발표를 했다. 미국과 유럽의 독무대였다. 7일은 문학상, 8일은 평화상을 발표했고 11일은 경제학상 수상자를 공개하며 2021년 노벨상 발표는 끝난다. 우리나라는 지난 2000년 故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를 위해 노력한 공으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하지만 아직 노벨 과학상은 받지 못했다. 노벨상 선정 기준과 과정, 이 상을 만든 알프레드 노벨 등 여러 에피소드에 관해 일문일답으로 알아본다.
-올해 노벨 과학상 발표가 끝났는데 지난 노벨 화학상은 어떤 연구로 누가 받았나.
△당뇨병·우울증같은 제약산업 등의 혁신에 크게 기여한 과학자들이 받았다. 금속이나 효소를 사용하지 않고도 비대칭 합성 화학물을 만드는 새로운 비대칭 유기촉매를 개발한 독일의 베냐민 리스트 막스플랑크연구소 촉매접촉분야연구소장과 미국의 데이비드 맥밀런 프린스턴대 교수다. 이로써 신약 물질부터 태양 빛을 받아 전기를 만드는 태양전지에 사용되는 분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물질을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게 됐다. 독일의 리스트 교수는 제자인 배한용 성균관대 화학과 교수와 함께 지난 2월 유기합성을 통해 베티버 오일의 향기 원리를 밝힌 논문을 발표했다. 미국 맥밀런 교수는 2016년과 2017년 서울대 화학부 석좌교수를 겸직하기도 했다.
-올해 노벨 물리학상은.
△기후변화가 심각한 문제인데 지구의 복잡한 기후와 무질서한 물질에 대한 이해를 넓힌 물리학자 3명이 공동 수상했다. 일본계 미국인인 마나베 슈쿠로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와 클라우스 하셀만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연구원, 조르조 파리시 이탈리아 사피엔차대 교수다. 이들로 인해 기후변화를 분석하는 현대적 기후 모델을 만들 수 있었고 혼돈과 무질서의 특징을 띠는 복잡한 물리 세계를 좀 더 알 수 있게 됐다.
-노벨 생리의학상도 서양에서 받았나.
△인간이 더위와 추위, 촉각을 감지하는 능력을 만드는 수용체를 발견한 데이비드 줄리어스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 교수와 아뎀 파타푸티언 미국 스크립스연구소 교수에게 돌아갔다. 인간이 어떤 방식으로 주변 환경을 감지하느냐는 미스터리 아닌가. 눈이 빛을 감지하고 다양한 화합물에서 냄새와 맛을 느끼는 등 감각의 원리는 수천 년간 인류의 호기심을 자아냈다.
-노벨 평화상 선정기준.
△노벨평화상은 러시아 언론인 드미트리 무라토프와 필리핀 언론인 마리아 레사가 공동 수상했다. 레사는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을 비판해 온 온라인 탐사보도 매체 래플러(Rappler)의 공동 설립자다. 무라토프는 러시아의 ‘사실상 유일한 독립언론’인 ‘노바야 가제타’ 공동 설립자로 24년간 편집장을 맡아왔다. 러시아의 부정부패나 경찰의 불법행위, 선거부정, 친정부 댓글부대 등을 폭로하는 기사를 썼다. 무라토프는 “이번 노벨평화상은 나 개인이 아닌 노바야 가제타와 (신문에서 일하다) 숨진 기자들을 위한 것”이라며 “외국 첩보원으로 낙인찍혀 공격받고 쫓겨나는 이들을 돕고자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이 최근 군이나 정보기관의 문제를 보도하면 외국 첩보원으로 규정할 수 있는 규정을 만든 점을 지적한 것이다. 노벨위원회는 공동 수상자에 대해 “필리핀과 러시아에서 표현의 자유를 위한 용감한 싸움을 벌였다”고 밝혔다. 언론인의 노벨평화상 수상은 독일이 1차 세계대전 뒤 비밀리에 재무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한 독일 카를 폰 오시에츠키의 1935년 수상 이후 처음이다.
-노벨 문학상은.
△올해 노벨 문학상은 탄자니아 국적의 난민 출신 소설가인 압둘라자크 구르나가 받았다. 스웨덴 한림원은 “식민주의의 영향과 난민의 운명에 대한 단호하고 연민 어린 통찰이 있다”고 밝혔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제 3세계 작가에게 노벨 문학상이 주어진 것은 2012년 중국 작가 모옌 이후 9년 만이다. 주로 영국에서 영어로 작품을 써온 구르나는 1948년 아프리카 동해안의 섬인 잔지바르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영국의 식민 통치가 끝난 1963년에 혁명이 발생하며 그가 속한 민족이 대량학살과 박해를 받자 1960년대 말 영국 잉글랜드에 난민 자격으로 이주했고, 아버지가 숨지기 직전인 1984년이 돼서야 잔지바르로 돌아왔다. 최근 은퇴하기 전까지 영국 켄트대 교수로 영어와 탈식민주의 문학을 가르치면서 장편소설 10편과 다수의 단편소설을 펴냈다.
-노벨 과학상에 초점을 맞춰서 얘기해보자. 우리는 아직도 노벨과학상은 없다.
△올해도 노벨 과학상이라는 ‘행운의 여신’은 우리나라를 비껴갔다. 그동안 아시아에서 일본이 24명의 노벨 과학상 수상자를 배출(일본계 출신 외국인 4명 별도)하고 중국 1명, 대만 2명, 인도 2명, 파키스탄 1명의 수상자를 배출했다.
-노벨 과학상은 어느 나라가 많이 받았나.
△미국이 40%대 중반 가까이로 압도적으로 많다. 영국도 10%대 중반 가까이 되고 이어 독일이 10%대 초반에 달한다.
-우리나라는 노벨 평화상을 받았는데.
△지난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를 위해 노력한 공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다만 우리나라 출신 미국 물리학자인 故 이휘소 시카고대 교수(1935~1977)가 힉스 이론을 입증해 노벨 물리학상 수상이 유력시됐으나 교통사고로 숨지며 받지 못했다. 노벨상은 생존자에게만 수여하는 게 원칙이다. 이 교수의 공동 연구자인 스티븐 와인버그 교수가 1979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으며 “이 상은 이휘소가 받아야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지난 2000년 노벨 평화상을 받고 미소를 짓고 있다.
-우리는 노벨 과학상을 왜 못받느냐며 안타까워하는 분들도 많은데 노벨상은 어떤 기준으로 선정되나.
△노벨상은 논문이 많이 인용되는 것뿐만 아니라 글로벌 연구 네트워크와 인지도, 연구 주제의 독창성, 연구성과의 기술·사회적 파급력 등 다양한 요인들을 따져 결정하게 된다. 국내 연구자들의 연구업적이 지속적으로 쌓이고 있다는 점은 희망적이나 다소 ‘축적의 시간’이 필요하다.
-축적의 시간이 필요하다?
△노벨상은 과학원리를 처음 발견한 연구자에게 주는 경향이 있다. 한국연구재단 보고서에 따르면 노벨상 수상자들은 핵심 논문(17.1년) 발표에서 수상(14.1년)까지 총 31.2년이 걸려 중장기적으로 기초연구와 젊은 연구자에 대한 지원확대와 자율성 부여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노벨상이 너무 남성과 백인, 미국과 유럽에 편중돼 있다는 지적이 있는데.
△그렇다. 역대 노벨상 수상자가 작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처럼 노벨평화상을 받은 단체가 30여곳 되고 수상자가 940여명 되는데 여성은 전체의 6%, 흑인은 2%가 채 안 된다. 다만 여성은 올해 노벨 과학상은 못 받았지만 21세기 들어 약진하고 있다. 대륙별로는 아시아의 비중이 2~3%밖에 안된다. 이스라엘은 물론 미국, 유럽에 주로 퍼져있는 유대인은 얼마 안되지만 역대 노벨상 수상자 22%가량이 유대인이거나 유대 가문이다.
-노벨상은 한 가족이 많이 받은 경우도 있다.
△역대 두 명 이상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가족은 11가족이다. 그중 최다 수상은 첫 여성 노벨상 수상자이자 두 번이나 상을 받은 프랑스의 마리 퀴리 가족으로 5명이나 된다. 그 외 노벨상을 두 번 이상 받은 사람도 4명에 달한다. 1915년에는 노벨물리학상 공동 수상자로 선정된 토머슨 에디슨(1847~1931)과 니콜라 테슬라(1856~1943)가 자존심 싸움으로 상을 보이콧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들 대신 그해 노벨물리학상은 X선 결정구조를 연구해 공식을 만든 영국의 ‘윌리엄 헨리, 윌리엄 로런스 브래그’ 부자에게 돌아갔다. 에디슨과 테슬라는 노벨상 소식에 “왜 같이 받아야 하느냐”며 노골적으로 불편한 감정을 드러낸다. 1991년에는 미얀마의 민주화를 이끈 공로로 평화상을 받았던 아웅산 수지의 경우 집권 시절 소수민족인 로힝야족에 대한 군부의 학살을 방조하며 노벨상을 반납하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한국의 파스퇴르’라고 일컬어지는 이호왕 고려대 명예교수 등 우리 과학자들도 간혹 노벨상 후보군으로 거론됐다.
△그렇다. 이 명예교수는 1976년 한탄강 주변에 서식하는 등줄쥐의 폐조직에서 세계 최초로 유행성출혈열 병원체와 면역체를 발견하고 이 병원체 바이러스를 ‘한타 바이러스’로 명명했다. 이어 유행성출혈열의 예방백신(한타박스)와 진단법(한타디아)도 처음 개발했다. 대단한 과학자이다. 작년에는 현택환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석좌교수(기초과학연구원·IBS 나노입자연구단장)를 노벨 화학상 유력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은 노벨위원회에서 발표한 것은 아니지 않나.
△맞다. 노벨위원회에 접수된 후보자 명단은 비공개 원칙이며 수상 결정에 대한 이의 신청도 받지 않는다. 모든 자료는 50년 후 공개한다. 언론에서 얘기하는 후보는 정보분석 서비스기업인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CA)가 ‘논문 피인용 우수 연구자’를 근거로 발표한 것이다.
-그 전에도 이 회사가 한국 과학자를 후보군에 넣지 않았나.
△이 회사는 2014년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유룡 KAIST 교수, 2017년에는 박남규 성균관대 교수를 각각 노벨상 후보군으로 꼽았지만 역시 맞추지 못했다. 2018년에는 로드니 루오프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수도 후보군에 올렸지만 마찬가지였다. 이는 ‘웹오브사이언스’의 문헌과 인용색인 분석을 통해 세계 0.01% 안에 들 정도로 논문이 많이 인용되는 과학자를 추리는 식으로 정량평가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노벨상을 받을만한 학자들을 알리고 연구 열정을 북돋우려는 게 목적”이라고 설명하지만, 매년 노벨상 시즌에 맞춰 후보군을 발표한다
-실제 노벨상 선정 절차는 .
△노벨위원회가 매년 9월 다음해 노벨과학상 후보를 지명할 과학자 수천 명을 선정해 양식을 발송한다. 다양한 국가와 대학을 대표할 수 있도록 교수, 과학자, 이전 노벨상 수상자 등으로 구성된다. 이들은 다음해 2월까지 지명 양식을 제출한다. 노벨 위원회는 이들을 심사해 예비 후보를 선정한다. 3~5월에는 전문가를 통해 예비 후보자 업적을 평가하고 6~7월에는 보고서를 작성한다.
-노벨상이 1901년부터 시작돼 올해가 121회째인데 노벨상을 만든 알프레드 노벨에 대해 알아보자.
△노벨상은 스웨덴의 발명가 겸 기업가인 알프레드 노벨(1833~1896)의 유산으로 만들어졌다. 노벨은 어려서부터 발명가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과학에 많은 흥미를 갖고 폭약에 관해 집중 연구한다. 그러던 중 드디어 1887년 강력한 폭발성이 있으나 열과 충격에 매우 약해 ‘악마의 물질’이라 불리던 나이트로글리세린을 안전하게 만든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하게 된다. 액체인 나이트로글리세린을 열을 흡수하는 성질이 있는 규조토에 흡수시켜 안전한 고체 형태의 폭약으로 바꾼 것이다다. 다이너마이트는 금새 도로·다리·철도를 놓거나 광산 개발, 건축 현장은 물론 위험한 살상무기로도 널리 이용되며 불티나게 팔려 나간다.
-노벨은 생전에 ‘악마의 장사꾼’으로 불리며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렇다. 노벨은 비서에게 자신이 개발한 발명품이 전쟁에 사용되며 많은 사람을 죽이는 것에 대한 절망감을 토로하기도 했다. 특히 1888년에 한 프랑스 신문이 노벨의 형이 숨진 것을 착각해 ‘악마의 장사꾼 노벨, 러시아에서 죽다’는 부고 기사를 내자 충격을 받기도 했다.
-이런이유로 유산을 인류를 위해 내놓은 것이다.
△9개국에 93개의 공장을 갖고 있던 그는 평생 독신으로 숨지기 한 해 전인 1895년 11월 일가친척 유산용으로는 20%만 남겨 놓은채 재산의 대부분을 스웨덴 왕립과학아카데미에 기부한다는 유언장을 썼다. 인류의 미래를 보고 노벨상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노벨 생리·의학상 등 노벨 과학상의 메달 뒷면에 새겨진 글씨를 봐도 그의 뜻을 짐작할 수 있다.
-노벨 과학상 메달 뒷면에 뭐라고 새겨져 있나.
△“Inventas vitam juvat excoluisse per artes”(‘경지에 이른 재능이 삶을 풍요롭게 함’ 또는 ‘발명은 예술로 아름다워진 삶을 더 풍요롭게 함’) 이라고 돼 있다. 희랍어로 된 이 문구는 베르길리우스의 서사시 ‘아이네이드’에 나온다. 몰락하는 트로이의 백성을 다스릴 인물로 예언을 받은 아이네아스가 신의 가호를 받아 문명국 로마를 건설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노벨의 유산을 바탕으로 여러 노벨상이 만들어졌는데 선정기관이 조금 다르지 않나.
△노벨 물리학상, 화학상, 경제학상은 스웨덴 학술원이, 노벨 생리·의학상은 스웨덴 카롤린의학연구소, 노벨 문학상은 스웨덴 예술원, 노벨 평화상은 노르웨이 국회가 선출한 5인위원회에서 각각 수상자를 정한다.
-노벨재단이 필요하면 상을 만들 수 있다
△그렇다. 노벨 경제학상이 1969년 추가됐다. 현재 ‘수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상은 필즈상이다. 1932년 숨진 캐나다 출신 수학자 존 찰스 필즈가 숨지며 내놓은 기금으로 만든 이 상은 40세 이하 젊은 수학자에게 4년에 한 번씩 수여된다.
-노벨상의 상금은 얼마나 되나.
△올해는 1,000만 스웨덴 크로나(약 13억5,000만원)이다. 지난해는 900만 스웨덴 크로나(약 13억 원)를 지급했다. 실질가치는 1901년 처음 지급한 15만 스웨덴 크로나의 가치와 비슷하다. 굉장히 큰 돈인데 이 보다 더 많이 상금을 주는 상도 있다. 바로 ‘아프리카판 노벨 평화상’으로 불리는 이브라힘상이다. 500만 달러(약 60억원)를 받고 평생 연 20만 달러씩 받는다.
-해마다 상금이 다른 이유는?
△노벨재단이 1년간 운영한 이자 등의 수입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한 해 이자 수입의 67.5%를 경제학상을 제외한 5개 부문의 상금으로 나눈다. 경제학상은 스웨덴 중앙은행 창립 300주년 기금이 원천이다. 노벨위원회는 매년 홈페이지에 상금액을 공개한다. 특이한 것은 노벨상에는 세금을 물리지 않는다. 두 명이 수상하면 절반씩 나누고 세 명이 받으면 3등분 하거나 공적에 따라 한 명이 절반을 갖고 나머지 두 명이 4분의 1씩 나누기도 한다.
-노벨상은 공동 수상자도 많은데 상을 타면 6개월 내 강연 의무도 주어진다
△노벨상은 생존자를 대상으로 각 상별로 3명까지 공동 수상이 가능하다. 다만 평화상은 단체도 받을 수 있다. 1901년 노벨 생리·의학, 물리, 화학, 문학, 평화상을 만들었고 1969년 경제학상을 추가했다. 영예의 수상자는 6개월 내 관련 내용을 강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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