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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 = FDNnews) 솔로 저널리스트 칼럼니스트 최봉혁 기자 =1968년 텔아비브 장애인올림픽에 첫 출전한 이후 1988년 서울장애인올림픽(패럴림픽)을 개최하면서 장애인 스포츠가 알려지고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모두가 ‘불가능’이라 생각했던 서울패럴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한 나라 ‘대한민국’. 특히, 서울올림픽과 패럴림픽을 동반개최 함으로써 패럴림픽대회 역사에 새로운 모델을 만들고, 이를 계기로 우리나라는 장애인스포츠의 눈부신 발전과 기량 성장을 이어왔다.
80년대 이전의 장애인은 세상에서 소외된 채 심지어 가족들마저 장애 자녀를 집안에 갇혀 지내게 하는 죽지 못해 연명하는 비참한 삶을 살아왔다.
장애인이라 지칭하는 용어 자체도 없이 불구폐질자, 또는 벙어리, 봉사, 외팔이 등으로 폄하하고, 멸시당하고, 천대받는 시대를 뛰어넘을 수 있었던 것은 누가 뭐래도 ‘88패럴림픽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대회를 성공시킨 고귀남 조직위원장을 인터뷰했다.
고귀님 위원장을 인터뷰 하러 서울에서 광주송정역까지 기차로, 그리고 약속 장소인 전남대학교 정문앞까지 버스를 갈아타고 정류장에 내리니 먼발치로 봐도 멋진 신사를 알아 볼 수 있었다. .
아랑드롱 모자를 쓰고 바바리 코트차림으로 서있는 멋진신사의 건강한 모습에 너무도 가슴떨리는 반가운 만남이었다.
바로 올해 구순(91)을 맞이한 고 위원장이었다.
장애인복지 역사속의 큰획을 그은 고 위원장의 이야기를 보도 한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Q 고귀남 위원장님은 패럴림픽조직위원장을 임명 받으신 특별한 사연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A 그시절 장애인을 제대로 인격적으로 대하는 사람도 없었다.
나도 역시 장애인에 대한 깊은 이해도가 없었다.
당시 전남 광주에서 정당의 사무국장으로 활동을 하면서 지역사회와 기업들의 네트워크가 활발히 연결돼 활동 중에 고교 동창인 한국지체장애인협회 광주지회장으로부터 후원회장을 맡아달라고 해서 장애인을 위한 후원 활동을 시작했다.
기억에 남는 일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걷기대회와 축제를 열었다.
전남 최초의 장애인복지관을 후원금 모금과 정부의 지원으로 건립했다.
이와 같은 경험 속에 장애인들의 어려움과 소외계층의 삶을 이해 하는 계기가 됐다.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나의 장애인 활동을 파악하고 나에게 패럴림픽조직위원장의 직책을 맡아 달라는 요청을 당시 보건복지부 이해원 장관을 통해 전달해 왔다. 그래서 나중에 대통령을 만날 기회에 조직위원장을 맡긴 이유를 물었더니 "지역사회에서 장애인 단체의 후원회장을 맡아 장애인 복지에 힘쓰는 모습을 보고 패럴림픽을 성공시킬 수 있겠다는 판단을 했다"고 들었다.
Q 패럴림픽 개최를 반대하는 분들이 많았다.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하셨는지요?
A 지금에 와서 생각해도 이해가 안되는 이야기 이지만 정말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 임직원들도 패럴림픽 개최를 심하게 반대했다. 우리 SPOC 임직원들이 업무협조를 위해 방문하면 문전박대를 당하고 돌아 왔다는 얘기를 들으면 정말 속상한 일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이유는 하계올림픽을 준비하기도 바쁜데 패럴림픽까지 하면 성공적인 개최를 방해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내가 노태우 조직위원장을 면담해 패럴림픽을 지원해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같은 정치활동을 하는 사람으로 당협위원장 자격으로 는 만나지만
패럴림픽 조직위원장으로는 찾아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대놓고 이야기한 일화가 있다.
추후에 노태우 위원장이 대통령 후보가 된 후로는 적극적으로 패럴림픽을 지원했고, 누구보다도 박세직 위원장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기에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Q 장애인 단체에서도 반대를 했다고 하는데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A 장애인올림픽을 알리고 치러내기 위해 홍보를 시작했다.
그런데 장애계가 들고 일어나기 시작했다. "우리가 장애인올림픽을 개최할 만큼 복지가 됐는가.열악한 환경 속에서 무슨 장애인올림픽을 하냐, 장애인의 현실은 굶주림에 처해 있는데 막대한 예산을 들여 겉치레 행사를 하는 처사다."라는 노골적 반발에 부딪치면서 난감하게 됐다.
그들의 주장은 장애인 단체는 수 십년 이끌어도 사무실 한칸 변변하게 못 얻는데 장애인올림픽 사람들은 사무실과 집기 등 모두가 화려한 사치와 낭비를 하고 있다. 장애인 분야를 이해하지 못하면서 무슨 장애인올림픽이냐, 차라리 그 돈을 장애인 복지를 위해 사용하라라는 등 질타가 이어졌다.
Q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가장 큰 난관과 해결책은
A 선수 숙소가 시급했다. 정부측과 여러차례 논의를 해본 결과 김포지구에 있는 신축 시민아파트 중 필요한 만큼 사용해도 좋다는 결론이 났지만 주경기장과 거리가 너무 멀었다.
아침 저녁 장애인선수들의 운송 문제가 야기 될 것이었고, 아파트 내 통로가 넉넉하지 못해 휠체어 한대가 겨우 지날 수 있었다.
당시 서울시가 주경기장 인근에 계획 중이던 아파트 시공을 장애인 선수촌으로 짓고 차후 장애인과 비장애인에게 분양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제안이 있었다.
우리는 천군만마를 얻은 듯 큰 문제를 해결하고 성공의 조짐을 알았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좋은 제안이었다.
Q, ‘88패럴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한 조직위원장으로서 남기고 싶은 말은
당시 대회 개회식에는 8만 명 관중들이 모여 감동을 주었고, 모든 프로그램들이 성대하고 웅장하게 치러졌다. 대회도 성공적이었다.
올림픽을 통해 일반 국민도 이제는 장애인을 경원과 동정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비장애인과 동등한 인격으로 대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장애로 인해 생활이 불편한 사람으로 인식이 바뀌는 사회가 된 것이다.
패럴림픽은 "장애인 복지의 끝이 아니라 출발점이라는 것을 기억해주기를 바란다." 라고 말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34년 전 88서울패럴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함으로써 일반 국민들의 장애인에 대한 관심과 인식변화를 불러일으키고 정부의 장애인 복지정책을 앞당기는 전환점으로 작용했다.
고귀남위원장은 88패럴림픽의 역사를 재조명해 출판을 앞두고 있는 "어둠을 뚫고 새벽을 열다" 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하고 있다.
우리는 다시 한번 지난 역사를 통해 장애인복지역사의 시발점과 미래를 향한 감수성을 함께하고 공평하게 삶을 공유하는 진정한 선진 복지국가의 실현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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